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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넌 웃었니? 난 울었다 ●diary



2008년 12월 31일날 마지막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문자를 보내면서 2008년을 추억의 한 해로 변해버렸다. 그날 밤은 무지무지 추웠던 밤으로 기억이 나고, 자취하고 있는 내가 친구들의 축복 문자를 받으면서 홀로 집에 있었다는 것으로 기억이 난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비행기 타야 하기 때문에 아무 술 자리에도 가지 않았다. 그리고 2009년 1월 1일. 나는 말레이시아에 있는 집으로 향하여 비행기를 타러 인천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옛날 다이어리를 뒤집어 보니 공항에서 일어난 재미있는 일도 있었고 솔직히 그날도 아직 내 가슴속에 머물고 있다. 좋게 시작하는 한 해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매우 기쁘고 기대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나는 2008년을 보냈었고 또 새로운 한 해한테 반갑게 인사하며 나의 2009년이 시작됐다.

시간이 참 빠르다. 눈 뜰 사이에 벌써 11월이라니. 그것도 벌써 11월 말이다. 2009년은 1 개월밖에 안 남았다. 돌이키고 보면 나는 대체 어떻게 지냈을까. 과연 친구들이 1월 1일날 되기전 30초쯤에 문자로 보낸듯이 새해 복을 많이 받았을까? 나한테 한 해 한해가 중요하다. 어떻게 한 해를 보냈는지, 그 한해 동안 나한테 어떤 일이 일어났는데 나를 얼마나 성장시켰는지 중요하다. 그런데 나에게 있어 2009년이라는 해가 정말 저주 받은 해만 같았다. 왜 안 좋은 일들을 한꺼번에 일어난건가라는 생각이 자꾸 들고, 가끔 무너질 것만 같고 도망가고 싶어지고 이러는 해였다.



애인관계




올해 가장 나한테 영향을 끼치는 것이 바로 남자친구하고의 결별이었다. 2007년 3월초, 딱 2년전에 나는 대학에 들어와 파릇파릇하고 풋풋한 대학생활을 처음 시작해보는 신입생이었다. 악기에 관심이 많아 나는 학교 오케스트라 동아리에 가입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악기를 잘 하지 못하여 바이올린을 친구한테 빌렸는데 튜닝을 할 줄을 몰랐다. 며칠뒤면 오디션인데.. 튜닝 없이는 연습할 수가 없어서 초조한 마음에 그 오케스트라 동아리 메인 홈페이지에 들어가 도움을 요청했었다. 마침 남자친구가 동아리 홈페이지 담당했을때였다. 홈페이지 메인에 담당자 번호가 떴길래 그 번호로 연락했었고, 이렇게 남자친구를 알게 되었다.

알게 모르게 알콩달콩하며 2년이 지났다. 대학 들어오자마자 남자친구 생겼으니 나는 당연히 친구 사귈 생각이 없었다. 아침 점심 저녁 같이 먹을 사람도 있고, 고민있을때마다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도 있고, 외롭거나 심심할때 나를 챙겨주는 사람도 있으니까. 친구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였고 또 나는 남자친구말고는 다른 사람한테 전혀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일편단심으로 이 남자를 사랑하고 서로 챙겨주고 그랬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잦은 싸움이 찾아오고 2008년 가을쯤에 우리한테 가장 큰 싸움이 시작 되었다.

나는 그래서 겨울 방학때 부모님이 계신 말레이시아로 찾아갔다. 잠시 쉬고 싶었고, 흩으러진 내 마음을 정리 하고 싶었다. 부모님 옆에 있으면 오랜만에 사랑을 받으며 행복한 겨울 방학을 보냈었다. 그러다 다시 개강이 되기 직전 나는 다시 한국으로 향하였다. 이미 정리된 마음으로. 그런데 몰랐었다. 서로에 대한 마음이 이미 멀어지기 시작하였을 때였고, 결국 헤어지게 되었다.

헤어지고 나서 나는 혼자서만 살아왔다. 핸드폰을 뒤집어보니 주소록에 전화번호가 1000개나 넘지만 막상 연락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나에게 가장 친한 친구 한명은 봉사활동으로 해외에 나갔었고, 또 다른 한명은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있었다. 같이 다니던 학교를 혼자서만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그 당시 내 마음을 아직 포기 하려고 하지 않았다. 아직 그 사람에 대한 기대가 있었고 그 사람에게 몰래 의지를 하면서 나머지 학기를 잘 보낼 수 있었다.




건강

올해 여름방학을 말레이시아에서 보냈었다. 그런데 엄마랑 병원에 갔다가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진찰 받게 되었다. 헐. 위장 상태가 너무 너무 안 좋다고 하신다. 게다가 자궁에 작은 종양이 발견 됐다. 다행이 양성종양이라 암은 아니지만 그리 걱정 안해도 됐었다. 그런데 자궁 문제보다는 내 위장상태가 더욱 심각했다. 소화를 제대로 못 한다고 하신다. 그래서 여름방학 내내 매일 아침에 나는 병원에 가 물리 치료를 받았어야 했다. 침도 맞고 이상한 기계에 기대며 제조같은 것도 했었고 음식 조절도 잘 했었다. 근데 건강상태가 안 좋았는데도 물구하고 가족 사랑 아래 나는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한국에서 조금이라도 열이 나도 혼자서 곧 우울해지기만 했었는데, 집에서는 엄마가 약을 챙겨주고 아침마다 아빠가 날 병원으로 바래다 주시고, 가끔 할머니도 나랑 같이 물리 치료를 받으러 가니 나는 오랜만에 가족애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친구관게

친구라는 정의가 대체 무엇인가. 고등학교때처럼 지내는 단짝? 아니면 얼굴이랑 이름만 알고 지내는 것도 친구라고 할 수 있나? 난 아직 구분이 못하고 있다. 그런데 며칠전 혹자가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대학친구. 대학친구라는게 무엇인지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대학친구라는 것이 학교에서만 만나는 친구랜다. 프로젝트나 과제를 할 때 만나는 친구. 동아리, 학회등의 뒷풀이자리에서 같이 술 마시는 대학 친구. 진정한 친구는 없댄다.

위에서 말했듯이 나는 친구가 없었다. 친구 없었다는게 부끄럽지만 나는 이 사실을 당당하게 받아들였다. 운이 좋게 나는 2009년 2학기를 교환학생으로 미국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그것도 1학년때 이름을 알고 친하게 지내지 못했던 친구들하고.
교환학생 합격됐다고 결과 나왔을때 마치 로또 당첨된 것처럼 너무 너무 기뻤었다. 미국으로 지원하게 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남자친구때문이었다. 남자친구가 미국 대학원으로 오기를 원했었고, 또 실제로 성공하여 지금 미국에 와 있다. 나는 남자친구를 따라 미국에 오고 싶었다. 물론 같은 학교에 붙으면 좋겠지만 솔직히 서로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서로말고 다른 친구하고도 지내보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운명이랄까. 나는 교환학생 붙고, 남자친구도 미국 대학원 합격하고 나서 헤어지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당당하게 미국으로 오고 싶었다. 백인들이 사는 세상에서 한번 눈을 뜨고 싶었고, 미국이라는 이 강대한 나라에서 내 사고를 키우고 싶었고 내 지식을 더욱 쌓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친구들하고 같이 붙게 되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없었다. 나한테 드디어 친한 친구가 생겼구나.

그런데 미국 생활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처음에 물론 새로운 곳에 와있으니 설레였고 마냥 신기하기만 하고 그랬지만, 시간이 갈수룩 학교도 적응이 못하고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랑 다르다는 생각이 마구 들어, 여기서 친근감이 커녕 정조차 들을 수가 없었다. 많은 양의 리딩을 읽어도 읽어도 대체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고 이것도 모르냐라는 생각에 스스로에게 짜증이나고 우울했다. 게다가 여기는 비가 너무 많이 오는 곳이라 기분은 땅바닥 밑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한국 떠난지 한 2달이 지나 향수병을 앓고 있는 내가 신경이 예민해지기만 하고 그랬다.

이제 스스로 서야 할 시기이다. 그런데 나는 그리 강하지 못했다. 누군가가 나를 잡아주기를 원했다. 나는 같이 교환학생 온 룸메한테 몰래 의지를 하고 싶었다. 룸메이트한테 남자친구처럼 집착하게 되었다. 남자친구처럼 모든 것을 날 챙겨주기를 바랬고, 내 외로움을 덜어주기를 원했다. 근데 그때 미처 몰랐던 것이 있었다. 룸메이트도 자기의 생활이 있었다는거. 그녀는 그냥 친구라는거. 나는 그녀의 무심코한 행동행동 하나에 상처를 받았다. 미국 환경, 학교, 집도 편하지 못하여 나는 너무 너무 한국으로만 가고 싶고 무력한 나를 너무 싫었다. 이때는 정말 내가 왜 미국에 왔을까라는 생각만 들었었고 일년을 어떻게 버텨가야 할지 생각조차 무서웠다.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고 싶고, 조금이라도 나를 이해하는 사람을 찾고 싶었다. 친구를 만나는데 여기서 나는 정말 정말 적응이 안된다고 말해버렸다. 울기도 했다. 2주동안 하루라도 안 우는 날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내 기분만을 얘기하고 내 생각만을 이야기했으며 너무 많은 오래를 일으키고 말았다. 나는 내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룸메를 욕하는 의도는 아니었다. 또한 나는 성숙하지 못하였던 것이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게 룸메이트한테 상처가 될 수 있다는거 미처 생각 하지 못했었다. 또한 사회가 좁으니 말이 빨리 펴지는 것도 생각조차 못했다. 너무 많은 것을 저질렀다. 그리고 또 말이 도니까 룸메이트한테 큰 충격이 됐고 나는 그에 대해서 설명 할 수도 없고 해명 할 수도 없었다. 말하는 거 사실이고 그건 내 실수였니까.

이렇게 나는 친구를 잃었다. 룸메이트뿐만이 아니라 룸메이트친구조차 잃고 말았다. 적응 때문이 의지하려고 했었고 의지때문에 그들조차 잃었다. 나는 지금 혼자다. 요새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꺼내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떤 후유증을 가져 올 것인지를 판단을 해야 하니까. 그래서 요새 침목하고 있다. 판단하는 것도 지치고 말 실수 할까봐 걱정하는 것도 지쳤다. 그냥 아무도 안 만나는 게 가장 편하다. 억지로 웃어줄 필요도 없으니까.




다시 한국으로

솔직히 미국 처음 왔을때에는 나는 너무 많은 희망과 기대를 가져 왔다. 그런데 그 희망과 기대가 하나 하나 깨지는 거 보면서 마음도 함께 유리조각처럼 흩으러지고 말았다. 나는 더이상 울지는 않는다. 여기가 내 곳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그래서는 나는 이번 학기만 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비행기표도 사놨고 여기서 공부도 못하고 인간관계도 못 지키고 남자친구조차 잃은 이곳을 나는 그냥 떠나버리고 싶었다. 그냥 안 좋은 일들을 여기에 남겨두고 가고 싶다.

12월 21일날 난 한국으로 간다. 한국 한국. 그토록 그리웠던 그 곳. 드디어 갈 수 있게 된다. 물론 가서 모든 게 다시 시작해야 한다. 처음부터. 이번에 한국 가서 새 학기를 시작해야 하고, 새로운 친구도 사귀고 싶다. 이젠 나는 집착을 안 할 거다. 대학친구. 친구는 대학친구일 뿐. 룸메이트가 나한테 말하는 것처럼 아무도 날 챙겨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미국에서 강해졌고 성숙해졌다. 예민해진 기분 하나에, 그리고 말 실수 하나에 모든게 잃을 수 있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잘 할 거다 나는. 한국에 들어가 나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물론 기대를 많이 안 하고 있다. 기대만큼 실망하는 법이니까 이번처럼 기대를 많이 안 하고 갈 것이다. 몸조리도 잘하고 마음정리도 하고 나의 인생을 위하여 달려보기로 한다.


화이팅.


미국 생활





따뜻해 보이는 햇살이 창문을 통하여 도서관 안을 환하게 밝혀주는 오후 3시, 나무의 그림자들이 나한테 인사하 듯이 흔들고들 있었다. 따뜻해 보이는 이 햇살..  내 가슴까지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다. 김광민의 '지금의 우리가 멀리 있을지라도'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난 왜 이 자리에 앉아 있는지, 에 대해서 생각 해 본다.

지금은 미국이다. 살아오면서 말로만 듣던 이 아메리카, 내가 여기 올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꿈만 같았다. 게다가 나는 미국의 어느 대학 도서관안에 앉아 영어로된 수업자료를 계속 읽고 있었다는거, 열심히 해온 보람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지금 저~~~ 멀리서 보이는 나랑 똑같이 공부하고 있는 한명의 백인 여자가 앉아 있다. 그여자도 뭔가 열심히 한 것 같은데 좀더 가깝게 다가가보니 만화나 보고 있었네_-_
어쨋든 지금 이 풍경은 왠지 그림 같다. 한국에서 사진으로만 봤던 이 풍경을 만끽하며 내 가슴이 갑자기 따뜻해 졌다. 햇빚이 강해서가 아니라 이 아녹한 공간 속에 내가 있어서이다.

미국 적응은 생각보다 힘들다. 그러나 힘든만큼 얻을 것이 많을 거라..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즐기면서 결실히 살아가고 있다. 여기서 많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하고 어울리면서 나는 내 스스로가 얼마나 부족한지, 또 얼마나 특별한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서양에서 사는 동양인들이 자기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면서 사는 자, 그리고 미국사회에 융합해 버려 자신의 문화를 아예 버린 자도 만나보았다. 나는 또한 후자 아닌가 싶다. 자신의 문화를 버리서라도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 전에 있었던 안좋던 추억들마저 버릴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그러니 늘 이런 모순에 빠지고 만다. 여전히 한국노래만 듣고 여전히 인터넷으로 한국 뉴스만 보고 있었다 (요새 산다라박의 키스에 빠졌음ㅋㅋㅋ). 한국이 너무 보고싶고 밥이랑 김치를 먹어야만을 나는 스스로 아직도 살고 있다는 것을 확신을 받을 수 있다. 열심히, 열심히 공부하고 자신에게 수고하다고 달래려고 난 늘 한국음식점을 찾아다닌다. 글쎄 어쩔 수 없다랄까?ㅋ 아님, 아직은 미국 생활에 덜 적응해서 그런지. 혼자 타국에 있어서 그런지..

어쨋든 어제는 과거이고 내일은 미래다. 싸이 사진첩 정리하다 보니 지났던 모두 내 시간이 다 추억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때 만났던 사람들도 추억이 되어 버렸다. 이제 나이도 나이고 학년도 학년이고, 떠나간 사람은 이미 떠나갔고 나는 옛날처럼 돌아갈 수가 없다. 후회하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아니, 후회하지 않아. 나는 대학 들어오면서부터 지금까지 하루하루, 그리고 순간순간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옛날 추억들이 즐거웠던 만큼 내 앞날들도 즐거울거다. 서운하냐고 물어봤다. 서운하다. 즐거웠으니 서운하다. 이제 그 순간순간들 모두 추억으로만 간직해야 하니 정말 서운하고 눈물이 난다.

인간은 원래 모순에 잘 빠진다. 나는 또한 그렇고. 이제부터 잘 하자:) 여기서는 나의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잖아. 학문만을 삶의 목적이 아니다. 내 삶에 있어서 불가결한 요소인 하나는 바로 '친구', 그리고 '사람'이다 . 이 세상은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까. 나는 사회의 한 공동체로서 사는 인간이니까. 이 사회에게 봉사를 하는 이 작은 시민이니까.  여기서 많은 사람을 만나자. 그리고 기억해, 이 사람들도 니 추억으로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니 화이팅 :)



 

우리 강아지, 4년째 실종.

결못남을 보면서 상구 (김소은의 애완동물)가 잃어버린 장면이 나왔습니다. 조재희 (지진희)와 정문정(엄정회)가 애타 열심히 상구를 찾아다니는 장면을 보고 어쩌 이렇게 마음이 아플까요. 정말 이 기분은 애완동물을 키워본적이 없으신 분들이 모를것입니다. 애완동물이 잃어버리는 거, 마치 자기 아들이 잃어버린것처럼 몇년이 지나도 이 아픔이 지워지지가 않더군요.

전 강아지를 두번이나 키워본 적이 있습니다. 학년때 생일 선물로 아버지한테 비싼 비글(Beagle)를 받았습니다. 태어난지 2주도 안됐는데 제가 직접 골라서 새로 이사온 아파트에 데려왔습니다. 아직도 어린 얘가 저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글쎄요 마치 한가족처럼 느껴지는거에요. 늘 제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공부하는데 제 무릎 위에서 조용히 자는 게 좋아했습니다. 물론 저도 무지 행복했죠^^

시간이 지나면서 얘도 커가면서 무거워집니다. 더이상 제 무릎이 얘를 감당할 수 없게 됐습니다. 얘도 알고 있었나봐요. 공부하거나 컴퓨터하는데 제 다리밑에서 자거나 혼자서 놀았지요ㅋ심심할때 제 다리도 핥고;;(이럴때 간지러워서 얘를 발로 찹니다-_-)
아니면 아버지를 좋아하는 이 강아지가 아빠가 소파에 앉아 티비 볼 때마다 자기랑 놀자고 아빠 위로 올라타서 우리 아빠 얼굴을 핥았습니다 (아 얘 침냄새 아직도 생각이 나네요).

얘가 이렇게 생겼습니다 ^-^

얘 어렸을 때




컸을 때



ㅋㅋㅋ참 귀엽게 생겼죠. 하지만 저는 고등학교 3학년부터 공부하느라 얘한테 전혀 관심을 주지 못했습니다. 또 다시 이사하는데 그 아파트가 애완동물 절대 금지라서 얘가 우리 따라 하루만 살다가 신고가 들어와서 어쩔 수 없이 다른대로 보내야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아빠 친구분네 공장에서 맡겼습니다. 이 공장은 냉장고를 만드는 공장이라 뜨거운바람이 나는 아~주 큰 냉장고 옆에 살았습니다. 그래도 이 공장은 제가 다니는 학원 근처에 있었으니 학원 갈때마다 들러서 얘랑 10분동안 인사하고 노는데.. 나중에 모의고사등이 다가오면서 가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빠가 매일 매일 빠짐없이 얘를 찾아가셨습니다. 아 존경스러운 우리 아부지.. 얘를 찾아가서 산책시키고 먹여주고.. 그러다 공장이 더러워서인지; 얘 몸에 벼룩이 생겼습니다. 그때 얘를 한번 만났는데 벼룩때문에 몸에 피나도록 굵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가슴이 아팠던지.. 그래서 아빠랑 벼룩을 죽이는 약을 사서 몇번이나 약을 뿌리고 벼룩없애는 전용비누를 사서 계속 목욕시켰는데 그래도 없어지지 않았어요. 공장에서 벼룩이 개몸 말고도 여기저기 숨겨 있었나봐요;

그래서 얘를 살릴려고 또 다른 친구분네에 맡겼습니다. 이 오빠 친구분네가 우리 집에서 거리가 멀어요. 차타고 가면 길 안 막힐때 30~40분이나 걸립니다. 고3인 제가 갈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매일 빠짐없이 거기 가시는 우리 아버지한테만 소식을 듣습니다. 아빠가 퇴근하고 가시는데 그 시간만되면 문앞으로 나와서 기다렸습니다. 어쩌다 중간고사 끝나고 아빠랑 같이 가게 됐는데 한 1시간정도 놀다가 우리가 집으로 가야했을때 얘기 우리 차를 쫓아 나왔고, 한 5분정도 우리 차뒤에서 뛰어 따랐습니다ㅠㅠ

그때부터 얘랑 놀고 헤어질때마다 힘들어졌습니다. 늘 우리를 따라하려고 나오니까. 그러던 어느날 아빠 친구분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개가 잃어버렸다는 겁니다!!!!!!!!!!!! 아빠차와 비슷한 차가 지나가는데 우리 차로 착각하고 뛰어 나갔다고 한답니다. 그 전화를 받고 아빠가 당장 그 친구분네에 달려가셨습니다. 그 동네 공원, 길가 등 뒤집어서 찾았는데...

이렇게 2주가 지났는데도 얘가 안 보입니다. 대체 어디로 간건지 모릅니다. 걱정하는 우리 아빠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정말 아픕니다. 걔가 제대로 먹고 있는지, 고생하고 있는지, 잠을 잘 자고 있는지, 자기보다 큰 개 있을때 잘 싸워 나가는지..ㅠㅠ

찾지 못했습니다. 하긴, 우리랑 같이 있을때도 정말 고생을 많았지요. 차라리 이대로 좋은 주인을 만나는 것도..

잘 있어야 돼 우리 강아지야
비룩 지금까지 4년이나 지났지만 제대로 너를 챙겨주지 못한 내가 너를 기억하고 있고
너를 사랑하고 있다.
아프지말고 꼭 잘 있어라.

그리고.
앞으로 강아지 안 키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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